제5회 다링안심캠페인

2018.06.16(토) 13:00~16:00 광화문 북측광장 및 청계천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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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피해수기

평범한 일상에서 범죄피해자라는 낙인으로 가득 채워진 그들의 삶 다시 세상의 빛을 찾아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BGM
  • 제 1회 다링안심캠페인 범죄피해수기

    “그날이 내게 없었더라면”

    • 2년 전 유난히 무더위가 심했던 여름날 그날이 내게 없었더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해 잠겨봅니다.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스런 아내와 일곱 살, 여섯 살 남매 그리고 연로하신 어머니와 함께 다섯 식구가 도란도란 서로를 생각하며 우리만의 행복한 공간을 만들어왔었습니다.
      “박광현씨 되시죠?” 경찰서라고 밝힌 전화를 담담하게 받고나서 아내의 사고소식을 듣는 순간 “아, 제발 꿈이기를...”
      그리고 뭔가 잘못되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짧은 순간에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기위해 통학차량을 배웅하고 설거지, 청소 등 매일의 일상을 하기위해 집으로 들어갔을 아내...
      그곳에서 맞닥드린 그 사람과의 조우, 그리고 충격과 공포속에 떠올렸을 가족들의 모습.... 이렇게 생각하기 싫은 기억속으로 아내는 사랑하는 저희 곁을 영영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니 무엇을 해야하는지 아무런 생각도 그리고 의욕도 없었지만 범죄피해자지원센터라는 평소에 전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곳에 근무하는 직원분은 경황이 없는 제게 유족구조금 신청 절차 그리고 심리적 안정이 중요하다며 지속적인 심리상담과 치료를 해주셨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 그분들이 베풀어주셨던 정성은 마치 친가족의 일처럼 진정성을 갖고 계셨고 함께 안타까워하시면서 늘 함께 가슴 아파해주셨습니다.
      2년이라는 멈춰버린 듯 한 시간 속에서 이제는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기 시작하였고 오늘 범죄피해자 지원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캠페인 행사에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일, 남에게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내게 닥쳐버린 지금 아내도 좌절과 방황속에 지내는 남편보다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 아픔을 이겨내는 제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것입니다.
      명절때면 더욱 생각나는 제 아내지만 센터에서는 쌀과 김치 등 생활필수품과 생활비를 지원해주셨고 수시로 전화연락을 해주시고 계십니다.
      파아란 가을하늘을 보며 또 눈이 시리도록 찬란한 가을의 한가운데에서 남아있는 가족들을 위해 더욱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여보! 다시 만날 그 때까지 안녕”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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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2회 다링안심캠페인 범죄피해수기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었던 피해자 유가족입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가족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고 또 그로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 보내고 절망의 나락에 빠져있었던 피해자 유가족입니다.
      저희 집은 3년 전까지 3명의 식구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비록 아빠라는 자리는 없지만 엄마와 저 그리고 여동생이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면서 잘 살 았습니다.
      아빠가 10년 전에 엄마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산다고 나갔을때 엄마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어린 나였지만 엄마에게 제가 든든한 아빠의 역할을 해주기 위해 대화도 많이 하면서 엄마를 도와드렸는데... 3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게 되는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같이 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빠의 존재만큼은 부정하지 않았는데 그런 아 빠가 엄마가 가지고 있는 돈을 뺏기 위해 엄마를 살해하여 엄마는 저희들을 남겨둔채 홀연히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그 당시 저뿐만 아니라 제 동생, 그리고 친척, 이웃 분들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를, 가족을 잃게 됐다는 사실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큰 충격과 아픔을 겪게 되 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와 동생은 이젠 엄마의 보살핌과 사랑을 받을 수 없고, 단둘이서만 생활해야한다는 불안감에 매일 매일을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

      아빠의 친척들은 엄마의 장례식장에도 아예 오지 않았고 친할머니 조차 우 리를 멀리했고 이모들은 전부 시골에 계셨기 때문에 정말 세상하늘아래 동 생과 나 둘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건이 방송에 나오면서 학교도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서워 동생과 나는 항상 집 안에서 함께 붙어 지내며 생활하였습니다.
    • 초등학교 4학년인 동생만 보면 눈물이 났고 엄마가 쓰던 물건들을 버리지도 못하고 상자에 담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너무 막막해 동생과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수면제를 사러 약국을 가는데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현관문을 열어보니 마치 엄마처럼 다정한 모습의 선생님이 제 이름을 부르 면서 저를 꼭 안아주시고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분이 지금 제가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선생님이십니다.

      처음엔 한분 이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세명. 네명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이 저희를 돌봐주셨습니다.
      선생님들께서는 항상 엄마 같은 편안함과 친근함으 로 대해주셨고 가사 도우미를 보내주셔서 청소, 세탁은 물론 반찬을 만들어 주시고 초등학생인 동생이 학원을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학원강의 시간들을 체크 해주시면서 학교생활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심리적-정신적으로 불안해하는 저희에게 심리치료,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 도록 스마일센터로 데리고 다녀주셨고 덕분에 조금씩 회복이 되어 친구들을 만나고 학업을 하면서 차츰 원래의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동생이 소풍을 가는 날 김밥 도시락을 준비해주시고 생일날 케익을 사주시고 방학이면 여행도 함께 해주시고 경험하지 못했던 바다낚시도 하면 서 슬픔을 이기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하늘나라에서 보내준 또 다른 엄마가 저희를 도와준 선생님들이십니다.

      만약 이런 따뜻한 보살핌과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와 동생은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비행 청소년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 고 증오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비뚤게 보고 있을 것입니다.
      일시적인 지원이 아닌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으로써 이제 저희는 어느 정도 의 아픔을 잊고 또래 친구들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저는 주변의 따뜻한 도움으로 등록금과 생활비 걱정 없이 공부하게 되어 지 금은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진로를 위해 고민 할 때마다 또 용기를 잃고 학 업을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딸처럼 보살펴주신 선생님들 덕분에 대학을 진 학하게 되었고 제게는 또 다른 꿈이 생겼습니다.

      제가 힘들 때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 이 자리에 서있게 될 수 있던 것처럼 저도 여러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 도록 사회복지에 꿈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늘 제가 있기까지 도움을 주신 많은 분들의 은혜에 조 금이나마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을 진학하면서 이모들이 계시는 대전으로 이사를 가기위해 짐을 싸는데 장롱 깊이 넣어져 있었던 엄마의 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일기장에는 엄마 혼잣말로 써져있는 글귀가 있는데 “엄마가 우리 딸들에게 미안 하구나 엄마, 아빠 잘못만나 아빠 없이 크지만 엄마가 그 이상으로 행복하게 해줄께” 지금은 잘해준다는 엄마는 없지만 이제는 제가 이 말을 동생한테 해줍니다. “엄마 아빠 없어 미안해 언니가 더 잘해 줄께”

      때로는 외롭고 꼭 한번만이라도 엄마를 다시 보고 싶지만 하늘나라에서 저 희 자매를 늘 지켜보고 계실 엄마를 생각하면서 구김살 없이 살아가도록 하 겠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이제는 기업에서도 많은 관심과 후원을 해주고 계시다보니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되며 저도 더 어려운 분들을 위해 희망의 불씨를 살리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우리 이웃들과 좋은 일을 하고 계시는 많은 분들이 모두 풍성한 결실 의 가을이 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저도 우리사회를 위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여 꼭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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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회 다링안심캠페인 범죄피해수기

    "나는 너무나도 소중한 사람"

    "저좀 도와주세요!" 이말을 하기가 왜이렇게 힘들었을까요?

    • “저 좀 도와주세요!” 이 말을 하기가 왜 이렇게 힘들었을까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아빠라는 사람에게 수년 간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아빠의 계속되는 폭행으로 집을 나간 엄마와는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렇게 지체장애인인 남동생과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아빠의 기분에 따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아야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도 아빠가 집에 들어오면 저는 두 손이 묶인 채로 수치스러운 행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나를 차라리 죽여 달라는 외침은 아빠를 자극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이를 악물며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갖은 용기를 내 친척들에게 도움 요청도 해보았지만, 제게 돌아온 건 ‘네가 외로운 아빠를 이해해야 한다.’는 황당한 설득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어른들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막상 죽고자 마음을 먹으니 그동안 침묵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회오리처럼 요동치더군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친구도 없이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아보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번쯤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게 그리 큰 욕심인걸까? 여러 차례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중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삶 속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 하나만으로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지요.

      그때부터였을까요? 분노를 모르고 슬픔이라는 감정에만 머물렀던 제가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저를 짓밟아온 아빠에게 무력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받으며 아빠가 그간 저질렀던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여러 상담소를 찾아다니며 하소연했지만, “부모를 처벌하는 것은 힘들 것이다.” 라는 일관된 답변만 받았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도 저를 보호해 주지는 못했지요.
      꽁꽁 숨기고 싶었던 제 치부가 낱낱이 발가벗겨지는 동안 제 마음의 문은 서서히 닫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만큼은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는 것처럼 제 안에 꽁꽁 숨겨왔던 이야기들까지 모두 털어놓게 되더군요.
      불행했던 지난날의 상처가 이따금씩 벌어지며 괴로운 감정들이 한꺼번에 북받쳐 오를 때마다, 염치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무작정 센터에 찾아가 목 놓아 울기도 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제 일처럼 보듬어주고 매만져주는 센터 선생님을 보며 난생처음 꿈도 꾸게 되었습니다.
      나도 선생님처럼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었지요.
      이때부터 저는 제 직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고, 센터 선생님은 제게 훌륭한 멘토가 되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간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고, 여러 차례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으며 이제는 어엿한 대학교 졸업반 학생이 되었습니다.
    •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센터 선생님은 저의 일상 이야기를 들으시며 함께 고민해주시고 눈물을 흘려주시는 참 따뜻한 분이십니다.
      또 저에게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분이시지요. 무더운 여름이나 엄동설한에도 명절같이 특별한 날이면 직접 집까지 찾아오셔서 선물을 전해주셨고, 얼마 전에는 다가오는 간호사 국가고시를 대비한 문제집도 한가득 안겨주셨습니다. 또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파랑새의 밤’이라는 행사에 저를 초대해 주셨지요.
      또한 다링캠페인과 음악회를 통해 뿌듯함과 감동의 눈물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재회한 엄마는 심한 당뇨병으로 인해 경제활동을 하실 수 없는 상황이었고, 지체장애 2급 진단을 받은 남동생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하였으며, 아직 어린 막내 여동생은 안정되지 못한 가정환경에 발달 지체를 보여 저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 좌절하고 있을 때,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저의 든든한 버팀목이자 후원자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관심 받는 것이 이토록 행복한 일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제 가족들에게도 전해지게 되었고요. 사실상 저희 엄마는 여태까지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며 속마음을 꽁꽁 숨겨오셨는데, 최근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주최한 음악회에 다녀오신 후 집에서 하루 종일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셨습니다.
      저는 단순히 ‘음악회의 여운이 많이 남으셨나보다….’ 라고만 생각했지요. 그런데 음악회 당시에 찍은 사진을 보니, 오랜 세월 켜켜이 묵혀두었던 감정들을 모두 쏟아내는 듯 한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고 계신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문화생활에 별로 관심이 없는 분’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사진을 보면서 참 많이 슬펐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난으로 인해 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버텨야하는 저희에게 이런 이벤트를 해주신 것에 대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염치없지만, 저와 같은 피해자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웃고 떠들 수 있는 하루를 앞으로도 종종 선물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은 일정량의 합당한 벌을 받으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하겠지만, 피해자들은 죽을 때까지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나누고 치유해 주고자 하는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이 아름다운 사랑이 오랫동안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센터의 도움을 받은 피해자들 역시 좌절을 극복하고 일어서 힘든 삶으로 고통 받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합니다.
      실없는 이야기지만, 엄마께 “엄마는 로또에 당첨되면 가장 먼저 뭐가 하고 싶어요?” 라고 여쭌 적이 있습니다.
      저의 이런 질문에 엄마께서는 “당연히 범죄피해자들을 도와줘야지.” 라고 말씀하셨지요.
      저는 앞으로도 이렇게 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선생님들과 가족 같은 관계를 이어나가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벼랑 끝에 서있던 저를 기꺼이 꽃길로 인도해주신 센터 선생님들, 정말 사랑하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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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4회 다링안심캠페인 범죄피해수기

    "언젠가는 찾아올 희망을 꿈꾸며""

    언젠가는 찾아올 희망을 꿈꾸며

    • 그날도 늘 그렇듯 회사에서 야근 중이었습니다.
      한창 업무를 보 던 중 전화벨이 울려 휴대폰을 보니 발신자는 어머니였습니다.
      사무실 시계를 보니 밤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평소 일찍 주무시기에 저녁 9시 이후에는 전화를 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뭔가 불길한 느낌으로 전화를 받으니 평 소와는 달리 떨리는 말투로
      “미현아, 아버지가 많이 아프시다. 지금 의료원에 있는데 좀 내 려와야겠다.” 하셨습니다.
      평소 병원도 잘 안 가시던 건강한 아버지였기에 의아 했지만 회사동료에게 간략하게 상황설명을 하고 서둘러 주차장으 로 달려갔습니다.
      그때 또다시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의료원에서 치료가 안 될 것 같아 병원으로 가야 된단다. 지금 병원으로 바로 내려와야겠다.” 어머니 목소리는 많이 불안해 보였습니다.
      무척 상황이 심각하다 는 걸 직감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 위치를 누르는 손가락 은 떨리고 있었으며 가슴은 쉴 새 없이 쿵쾅거렸지만 차량 비상 등을 켠 후 1차선을 달리면서 가는 내내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 새벽 2시경 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뛰어들어갔더니 대기실에 어머니와 친척분들이 와계셨습니다.
      어머니는 나를 보자 울먹이며 손을 잡고 응급실 안으로 이끌었습니다. 10개가 넘는 링거를 몸 여기저기 꽂고 침대에 누워계신 아버지는 몸 전체가 부어있었고, 배도 많이 부풀려져 있었습니다.

      응급실 과장님께서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머릿속은 혼란을 넘어서 그냥 백지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을 차리라고 울부짖으셨습니다. 응급실 과장님에게 물었습니다. ‘더 큰 병원으로 이송하면 살 수 있느냐고.’ 그러나 고개를 저으시며 이송 중 사망확률이 너무 높다고 하셨습니다.
      제발 살려만 달라고 애원했지만 대화 도중 아버지에게 심정 지가 왔습니다. ‘평화스럽던 시골 마을 회관에서 누가 무엇 때문에 무슨 억하심 정으로 농약이 든 소주를 아버지에게 마시도록 하여 이런 고통을 주는가?’ 죽이고 싶도록 미운 마음뿐이었습니다.
    • 새벽 내내 심정지와 심폐소생을 반복하던 아버지의 생명신호가 꺼졌고 의사 선생님은 사망선고를 하였습니다.
      뭐가 어떻게 된 건 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은 복잡하기만 하고 그저 한 없이 눈물만 나왔습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잃을까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기만 했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 많은 사람들이 홀로 남겨진 어머니와 나 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셨으나 귀에 들리지도 않았습니다.
      늘 받기 만 한 아버지의 사랑을 갚을 길이 없다는 죄책감과 죄송함에 영 정사진 앞에서 한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집안 곳곳 아버지 의 흔적에 울다 쓰러지시기를 반복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믿지 를 못하셨고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저는 억장이 무너졌고, 가슴을 후벼 파듯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너무 억울했고 분했지만 아픈 어머니를 앞에 두고 표현을 할 수 도, 눈물을 흘릴 수도 없었습니다.
      가해자를 검거하기 위해 수사는 계속되는 사이에 어머니와 나는 몸도 마음도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녀오던 날 집 마당에 낯선 분들이 계 셨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나오셨다며 명함을 건네며 상세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상황에 극도로 예민 해져 있었으며 어머니 또한 외부인을 만나길 원하지 않으셔서 다 음에 다시 방문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며칠이 흐르고 센터에서 직원분이 다시 방문해주셨습니다.
      처음 으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도록 조금이라 도 도움을 주시고자 하시는 마음이 대화 속에서 느껴졌습니다. 경 제적으로 부담을 느낀 저에게 병원비와 장례비를 지원해주셨으며, 어머니가 조금이나마 편히 계실 수 있도록 거주지의 환경도 개선 해주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심리치료를 받으실 수 있게 해주셨고, 수시로 전화를 주셔서 어머니 상태를 체크하고 최대한 도와주시려고 애써주셨습니다.

      ‘범죄피해자지원센터’라는 단체를 전혀 몰랐던 저는 시간이 흐 름에 따라 너무나 고마움을 많이 느낌과 동시에 조금씩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논을 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센터에서 연결해주신 멘토님과의 만남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상담을 통해 심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아버지의 죽음과 상황에 대해 억울함과 분노로 가득한 마음을 가진 채 아버지의 흔적이 많은 집에서 생활하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어서, 도망치다시피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 어머니는 심리치료가 필요하여 센터에서 상담을 계속 받으시고, 한글까지 깨우쳐 주셔서 이제 책도 마음대로 읽게 되셨으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생활환경에 조금씩 적응 과정을 거쳐 건강 또한 많이 회복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되자 저 또한 직장에 복귀할 수 있었고 센터 에서는 변함없이 저와 어머니를 친가족처럼 챙겨주셨습니다. 1년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얼굴에 웃음을 띄울 수 있는 날들 이 조금씩 생길만큼 어머니도 저도 많이 좋아졌습니다. ‘어머니가 웃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라고 처음에 생각했던 제게는 어머니의 웃음이 희망으로 보여 더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주말에는 아버지 산소에 들를 예정입니다. 아버지께 어머니가 많이 좋아지셨다고, 너무 걱정하 시지 말라고, 하늘에서 근심걱정 말고 웃으며 지켜봐 달라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이야기 드릴 것입니다.

      범죄피해자……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으면 하 는 일을 현실로 겪고 나니 글로써는 표현이 안 될 만큼 너무 막 막하고 아프고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릿속이 너무 복잡하며 마음속은 분노와 증오, 원망으로 가득차 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지만 그 고통에서 꺼내주신 분들이 범 죄피해자지원센터 분들입니다.
      센터 직원 분들의 도움이 아니었으 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 을 것입니다.
      아직 모든 상처가 치유가 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완쾌가 될 것 이라고,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며 희망을 심어주신 센터 관계자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범죄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기에 오늘도 새로운 하루 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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